맛있는 다문화

윤은주(수필가, 창원다문화어린이도서관 ‘모두’운영실장)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의 통영동원고등학교로 가는 길, 필리핀,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몽골 출신의 결혼이주 여성으로 구성된 다문화 강사들은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들만큼이나 설레는 듯 했다. 학교의 특별 기획 수업으로 아시아의 식탁을 차리기로 한 날, 이날 수업이 음식에 관련된 것이었기에 가는 길의 화제도 자연히 ‘한국의 음식’으로 모아졌다.

한국에 처음 와서 ‘할머니 뼈다귀탕’이란 간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 거리마다 곰탕집이 있어서 한국에 곰이 그렇게 많은지 신기했다는 이야기들이 왁자한 웃음과 함게 이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여유 있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이젠 그들이 한국의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여겨져 드는 나도 내심 흐뭇했다.

준비가 끝나고 강사들과 아이들이 국가별로 여덟 개의 테이블에 둘러서서 요리를 시작했다. 면이나 밥, 국물요리, 떡 후식 등으로 나누어 재료 손질이 끝나고 다문화 강사의 지시에 맞추어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조리실엔 구수한 냄새가 솔솔 퍼지기 시작했다. 요리가 완성되는 대로 식탁을 꾸미고 각 나라의 국기를 세운 뒤 음식을 차려놓고 보니 작은 식탁에 아시아 여덟 개 나라를 옮긴 듯 풍성하고 맛깔스러워졌다. 미리 요리의 종류도 겹치지 않게 준비해 둔 터라 전채요리부터, 면과 밥, 국물요리, 빵, 떡, 후식까지 맛나게 차려졌다.

드디어 준비가 끝나고 시식 시간, 맛보다는 호기심이 아이들을 자극했나보다. 탁자를 돌며 요리를 맛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마치 요리 경연대회 심사위원마냥 진지했다. 학교 급식실의 작은 식탁에서 아시아를 맛보고 조리법도 알아가며 아이들은 그 순간 어떤 편견도 없이 다문화를 온몸으로 이해하는 듯 했다.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모국이나 한국의 음식에는 익숙하지만 다른 나라의 음식은 잘 알지 못하는 다문화 강사들도 호기심도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각자의 나라 음식이 어떤 점에선 서로 비슷하고 또 어떤 점에선 무척 다르다며 배운 것을 가족들에게 한 번 만들어 줘야 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왁자한 작은 축제에서 문득 ebs 지식채널에서 방영한 ‘컨플릭트 키친’(Conflict Kitchen)이란 짧은 영상 한 편이 떠올랐다. 미국 피츠버그시의 중심가에는 6개월마다 다른 나라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하는 식당이 있다. 북한, 베네수엘라, 아프가니스탄, 쿠바, 이란 등의 미국인들이 핵이나 전쟁, 테러로 기억하는 소위 위험국가들이 주요 대상이다. 식당의 주인은 ‘음식은 지성을 뛰어넘어 본능으로 연결하는 수단’이라며 이런 시도를 통해 있는 그대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미디어가 아무리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해서 이 나라들을 보도하더라도 그게 전부일 리 없지 않은가? 한 나라의 소소하고 행복한 삶, 문화, 생활이 음식들에 담길 것이니 맛으로 그 나라를 느껴본 사람들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편견뿐인 그 나라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뜻에서 나는 ‘아시아의 식탁’이 무척 의미 있는 시도라 여겨졌다. 다문화를 대하는 생각이나 태도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지지리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 온 효녀 심청같은 존재로만 한정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것뿐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이 살아온 삶, 이주민들이 지니고 이 땅에 온 문화적 관습들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편견과 독선에 사로잡혀 옆도 뒤도 보지 못하는 일부의 한문화인들을 훌륭한 세계인으로 기르는 교과서가 될 수 있다.

여태껏 한 수업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뜻 깊었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 짧은 세 시간이 단순히 요리 수업만은 아니었음을 깊이 느꼈다. 말로만 다문화 이해를 논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기회가 더 자주 교육과 생활 현장에서 주어졌으면 한다.

다문화는 참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