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어린이도서관‘모두’의 봄
윤은주(수필가, 다문화어린이도서관 ‘모두’ 운영실장)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다문화 어린이도서관에 봄이 찾아왔다. 오늘은 다문화어린이합창단 개강식, 아이들의 키가 부쩍 자란 듯하다. 아마도 마음은 더 많이 자랐으리라.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합창단에 들어온 아이들은 서툴게 허둥댄다. 그마저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오랫동안 창원다문화어린이도서관에서 자원봉사로 한국어를 가르치다가 실무자로 일한지 이제 1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재작년 말에 그동안 도서관을 후원해오던 기업의 경영상황이 악화되어서 후원이 중단되었던 때였다. 그리고 1년여, 그동안의 활동 상황을 정리한 신문을 보며 스스로 대견하다.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이토록 많은 일들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2009년에 문을 열었으니 다문화 도서관은 올해 여섯 살이다. 혹독한 네다섯 살을 보내고 이제 겨우 혼자 힘으로 발걸음 옮겨 놓을 정도는 되었나보다. 햇살 좋은 봄날에 또 한 번의 출발점 앞에서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다문화도서관 운영실장이라는 직함을 맡아서 도서관이 최소한의 운영자금을 운영하도록 해야 하는 일이 나의 숙제였다.
기업에서 전적으로 운영자금을 지원해줄 때는 그런 절박함이 없었지만 이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두 다리로 서야 했다. 우리가 생각해낸 궁여지책은 ‘시민의 도서관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3천원, 5천원, 1만 원 등 마음이 가고 형편이 허락하는 선에서 시민들의 기부를 받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돈 나가는 것 아깝지 않은 사람 없겠으나 명분이 있고 또 필요성이 절실했던 일이라 많은 분들이 기꺼이 기부에 동참해 주셨다. 누구 한 사람, 어느 한 기업의 힘으로 도서관이 운영될 때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웠으나 보람과 기쁨은 말 할 수 없이 컸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후원회원이 늘어나고 여러 홍보사업들도 펼치면서 우리는 기대 이상의 한 해를 보냈다. 일 년 내내 한글 교실을 운영하며 이주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을 도왔고 ‘테마가 있는 도서관’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한문화인들에게 소개했다. 또한 ,‘마음을 여는 다문화 책 읽기’ 프로그램으로 여러 학교를 방문해 다문화 독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작년 11월 ‘다문화와 한문화가 함께 떠나는 독서문학 기행’프로그램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청소년 독서회, 다문화어머니독서회, 장애인 독서회, 외국인노동자독서회, 실버 독서회등 다양한 사람들이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으로 떠난 이 기행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아량을 배웠다.
청소년 다문화 학교를 개최한 뒤 ‘다문화의 참 모습을 이해하고 배우게 되었다. 다문화가 우리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가치 있는 수단임을 알게 되었다.’고 쓴 한 학생의 소감문을 보고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제비처럼 입을 오물대며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들을 보며 문득 LG 세이커스 농구팀 2014-15시즌 개막식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는 우리 사회 다문화의 희망으로 우뚝 선 문태종 선수를 바라보며 열심히 애국가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서 제2의 문태종, 더 나은 인순이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나, 백화만발한 꽃밭에서 각각의 향기를 뽐내며 다문화의 꽃이 피어날 날이 머지않았다.
나는 꽃밭에 거름을 주고 물도 뿌려주며 소중히 가꾸어갈 생각이다. 올해는 또 이 다문화의 어린 꽃들이 자라나는 꽃밭이 어떤 근사한 빛깔과 향기로 가득찰지 자못 기대가 된다.
